<한겨레21> ‘청소년 자해 3부작’의 마지막 회 가제목은 ‘자해 그 뒤’였다. 자해의 원인이 다양한 만큼 해법도 개별적일뿐더러, 자해를 섣불리 질병화하는 역효과를 우려해 아직 ‘자해 대책’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 수 없었다.
청소년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진통제로 자해를 선택했던 사람들은 자해 그 뒤 어떻게 됐을까? 성인이 된 뒤에도 다른 출구를 찾지 못한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다행히 자기만의 건강한 방법을 찾아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된 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 회 제목이 ‘자해를 멈춘 사람들’로 결정된 배경이다.
자해를 멈춘 사람 중에는 특히 자신이 겪은 아픔과 괜찮아지기까지 과정을 적극적으로 나누려는 선의를 가진 이가 많았다. 그들을 ‘한때 자해했던 이상한 사람’으로 보고 배척할지, 아니면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 혹은 ‘동료 전문가’(Peer Specialist)로 인정하고 그들이 내민 손을 붙잡을지는 한국 사회의 선택이다. 다만 그 선택에 따라 향후 한국 사회가 마련할 자해 대책은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릴 가능성이 높다.
경기도 수원 행복한우리동네의원 카페(우리가 꿈꾸는 동네) 벽면에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응원하는 사진이 붙어 있다.
“다른 사람들한테 꼭 해주고 싶은 얘기예요. 제가 자해했다는 걸 숨길 생각 없어요. 오히려 제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게 자랑스러울 거 같아요. 자해하는 사람이나, 자해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도움 될 수 있다는 게.”
고교 2학년 김빈(18·가명)은 지난 10월13일 실명 인터뷰를 고집했다. 가명을 쓰기로 한 건 <한겨레21>의 설득이었다. 정신건강 문제 전반에 대한 편견이 깊은 한국 사회다. 아직 성인이 아닌 빈에게 만에 하나 피해가 갈까 걱정이 앞섰다. 빈을 병원에 데려갈 때도 행여 아들 장래에 누가 될까 “의사에게 ‘진료 기록 안 남는 거 맞느냐’고 끝없이 물었다”(빈의 말)는 어머니의 마음도 배려했다. 대신 빈에게 약속했다.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훗날 디지털 기사에 다시 빈의 진짜 이름을 넣어주겠노라고.
빈이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빈은 그것을 “희망”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굳이 정의하지 않았어도 자해하는 아이들과 부모에겐 비관에 맞설 가능성을 보여주는 경험담이었다. 빈 역시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자해를 했다. 중3 겨울방학 때 처음 병원을 찾은 뒤 2년간 4명에게서 “허술하고 부실한” 치료와 상담을 받았다. 그사이 자해는 변하지 않을 습관처럼 굳어갔다. 학교 상담교사의 소개로 별 기대 없이 찾은 병원에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다섯 번째 상담사를 만난 지 4개월, 빈의 자해는 잦아들었다. <한겨레21>은 6~7년간 지속된 빈의 자해가 4개월 만에 호전된 배경을 알고 싶었다. 빈의 생각을 전하는 데 충실하되, 이해를 돕기 위해 빈의 ‘다섯 번째 상담사’ 문현호(우리동네정신건강연구소, 소리와 건강연구소 초록문) 선생님의 설명을 보탰다. 이하 분홍 바탕 글은 문 선생님의 설명이다.
빈을 자해에 이르게 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자기혐오
수원 행복한우리동네의원 카페(우리가 꿈꾸는 동네) 벽면에 붙어 있는 응원 글귀들.
“외아들이라 부모님 기대가 컸어요. 성적 스트레스가 심했죠. 시험 몇 개 틀리면 부모님이 물건 던지고 부수고. 2~3학년 때 게임기 같은 아끼는 물건을 물에 집어넣는다고 하시고. 사소한 일이지만 트라우마로 남았어요. 초3 때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부모님은 의사가 돼야 성공한다고 하셨어요. 맞을까봐 무서워서 공부하긴 했는데 ‘이걸 왜 해야 하나, 내 인생에 도움이 되나’ 싶었죠. 부모님한테 힘들다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는데 ‘또 죽고 싶냐’며 엄살이라고 혼내셨죠. 초등 4~5학년 때부터 자해인지도 모르고 벽에다 머리를 찧었어요. 부모님은 중3 때까지 모르셨고요.”
빈은 머리가 좋고 어릴 때 공부를 잘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부모님이 공부 쪽으로 다그쳤던 듯한데, 빈이 맞추다 맞추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공부를 놓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마찰을 빚기 시작한 것 같아요.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많고 자기를 표현하고 발휘하고 싶은 욕구가 큰 아이인데, 방법을 몰라서 힘든 경우예요. 방법을 모르니까 자신을 원망하고, 너무 힘드니까 자해하게 된 거죠.
“사소한 것도 걱정하고 혼자 고민하는 버릇이 있었고 겁이 많았어요. 우울할 때 정말 여러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뭐가 문젤까, 내가 힘든 이유가 뭘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보면 원인이 제가 되더라고요. 더러 남을 탓하거나 남들한테 까칠하게 구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저 자신한테로 화살이 향해요. 죄지은 것 같고 벌 받아 마땅한 것 같고, 스트레스를 풀 방법은 없고. 오롯이 내 잘못이고 남들한테 민폐 끼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생겨요. 정작 피해 주지 말아야 하는 일엔 신경 안 쓰고, 제가 의식하는 것만 골몰하게 돼요. 남들이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제 옷 색깔이라든가…. 말도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자책하면서 최악의 상황만 생각하죠. 뭔가 머릿속으로 불안하고 잠도 못 잘 것 같고 생각이 복잡할 때 자해를 하면, 멍해지면서 다 잊을 수 있었어요. 머릿속을 비우려고 어떤 사람은 명상을 하고 어떤 사람은 취미생활을 하지만 저는 자해를 한 거예요.”
자해하는 아이들의 상태가 행복하진 않겠죠. 우울·불안·답답·스트레스 등 많을 텐데, 그런 감정적 혼란을 야기하는 것은 자기혐오감이에요. 자기에 대한 철저한 비판, 죄책감, 자책. 자기혐오감이 큰데 잘 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잘 살고 싶은데 내가 너무 싫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데 가르쳐주는 데가 없죠. 요즘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남과 비교당하는 것부터 시작해요. 남과 비교하면 자신한테 부족한 것밖에 안 보이죠. 뭘 해도 나보다 뛰어난 애들은 어디든 있거든요. 나도 잘하고 싶은데 안 되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내 ‘몸뚱아리’밖에 없으니까… 자기도 모르게 어느 순간 긋고 있더래요. 시작은 나도 모르게 하게 됐는데, 해보니까 갑자기 감정적 혼란이 풀리더라는 거예요.
“5~6학년 땐 왕따도 당했어요. 면역력이 좋지 않아서 이곳저곳 자주 아프고 가만히 앉아서 그림만 그리니 살이 찌더라고요. 친구들한테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진 못했던 거 같아요. 놀리거나 다 같이 저를 따돌리거나 그랬죠. 초등학교 시절은 별로 되돌아보고 싶지 않아요.”
빈은 위안거리가 없는 친구였어요. 학교를 가도 어디에 있어도 마음 둘 곳이 별로 없고,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관계 속에서 힘든 게 있었어요.
어떻게 자해했을까? #방법보다 이유
수원 행복한우리동네의원 카페(우리가 꿈꾸는 동네) 벽면에 붙어 있는 응원 글귀들.
“펜이나 연필로 팔다리를 찍거나 칼로 긋거나. 긋는 건 중2 때 처음 했어요. 처음엔 안 그랬는데 나중엔 피를 내지 않으면 진정이 안 됐어요. 정말 우울하고 복잡할 때, 처음에는 감정을 표출할 수단이었다가, 횟수가 잦아지면서 습관이 되더라고요. 조금만 긴장하면 긋게 되고. 처음엔 베이는 거랑 느낌이 똑같은데, 점점 아픈 데 무뎌지고 익숙해져요. 자해하는 사람한테 얼마나 상처가 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왜’ 자해했는지 이유가 중요할 뿐이에요.”
빈은 난사하는 정도로 상처를 내요. 자해한 날은 팔 전체가 스크래치로 덮여 있죠. 시간이 좀 지나면 팔이 깨끗해지는 걸 보면, 상처를 깊이 내진 않고 힘든 게 풀릴 때까지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부모님 반응은 어땠을까? #부인과 비난
“학교 상담이 원래 애들한테는 평가가 안 좋아요. 비밀을 유지해준다고 한 다음에 부모님한테 다 말해요. 엄마가 알고 ‘내가 안 해준 게 뭐냐’며 엄청 혼내고, 울고불고 하시니까 또 싸우게 됐어요. 그때를 되돌아보면 엄마가 저한테 했던 말 하나하나가 다 트라우마예요. 중3 겨울방학 때 처음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우울증 심하다’고 하니까 엄마가 ‘의사가 돌팔이’라며 안 믿었어요. ‘네가 뭐가 힘드냐, 힘든 거 자랑 아니니 숨기고 다녀라’ 그러셨죠. 옮긴 병원에서 약을 받았는데 엄마가 ‘검사 결과 틀렸다, 약 버려라’고 해서 약도 못 먹었어요.”
자해하는 아이들에게 ‘왜 그렇게 의지가 약하냐, 고작 그런 걸로 자해하냐, 너만 힘드냐, 정신병자냐’는 흔하게 가해지는 비난이에요. 아이가 자해했을 때, 누구 잘못인지 찾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요. 중요한 건 현재와 이후예요. 앞으로도 인생은 힘들고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을 거예요. 계속 스트레스에 얻어터지고만 살 것인가… 다르게 사는 방법을 찾게 해야죠. 아이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당분간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곁에 머물러주는 게 필요해요.
“자해하는 이의 주변 사람들은 위로해주는 역할이 중요해요. 근데 ‘내가 너를 걱정·위로해줬는데, 왜 너는 내 말을 안 듣냐, 왜 너는 노력하지 않고 계속 자해하느냐’고 섭섭해하고 화를 내죠. 변하고 싶은데 안 되는 걸 어떻게 해요. 노력의 기준을 변화로 보면 안 돼요. 제일 안 좋은 행동인데, 엄마가 집에 있는 날붙이(날이 있는 연장)를 다 없앴어요. 날카로운 건 어디든 있고 날카로운 거 없어도 맘만 먹으면 자해를 할 수 있어요. 자해를 멈추고 안 죽는 게 목적이 아니라, 팔 안 긋고 목 안 매어도 행복해지는 게 목적이 돼야 해요.”
전문가도 막상 아이가 자해해서 피 흘리고 병원에 오면 공포·좌절·반감을 느껴요. 부모야 더 심하겠죠. 내 자식인데 더 당황스럽고 더 큰 아픔을 느끼시겠지만, ‘아이에게 자기를 돌보는 건강한 습관을 알려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기다려주세요.
“‘내가 널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데’로 시작하는 잔소리… 끝도 없죠. 그럼 자해하는 아이는 ‘부모님도 자기 생각밖에 안 하는구나’ 하고 배신감을 느껴요. ‘내 편은 세상에 없구나’ 싶어지는 거죠. 정신적 고통을 육체적 고통에 비유해보세요. 열심히 운동하다 피 흘릴 정도로 다쳤어요. 그걸 가지고 다그치면서 ‘너는 왜 그거 하나 너 혼자 못 고치냐, 너는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주저앉아 있느냐’고 안 하잖아요. 자해를 억지로 막는 일만 안 해주면 좋겠어요.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면 차라리 무시하는 게 나아요.”
빈의 어머니도 요즘은 달라지셨어요. 빈한테 듣기로는, 어머님이 대화하려 노력하시고 아이가 원하는 걸 지지해주는 쪽으로 많이 바뀌셨다고 해요. 빈이 취미로 거미나 전갈을 기르고 싶어 했는데, 어머님은 싫어하시지만 그것도 허락하셨대요.
치료는 효과가 있었을까? #치료보다 소통
수원 행복한우리동네의원 카페(우리가 꿈꾸는 동네) 벽면에 붙어 있는 응원 글귀들.
“1년 정도 다닌 병원에서 항우울제와 충동억제제를 처방받았어요. 정말 힘들 때 사흘치 약을 한꺼번에 털어넣고 학교에서 내내 잤어요. 어지럽고 속도 메스껍고. 정신과 선생님이니까 다그치시진 않았는데,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사실 저는 빈이 우울증이라는 진단에 동의하지 않아요. 저는 빈에게 ‘문제가 너에게 있는 거 같지 않다, 정신질환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해요. 빈이 말을 되게 잘하잖아요. 감수성이 굉장히 예민하고 사람들의 말투나 관계, 피드백에 많이 영향을 받아요. 잘 발현되면 남들보다 독특한 감각으로, 부정적 감정으로 얽히면 자기를 파괴하는 쪽으로 갈 수 있죠. 다행히 요즘 감수성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것 같아서 기뻐요.
“누구와 상담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요. 정말 무성의하게 대충 하는 상담사도 많아요. 전에 미술치료를 했는데 종이 하나 주고 아무거나 그리라고. 저는 이미 그 상담사가 다음에 뭘 물어볼지, 무슨 의도로 물어보는지도 다 알고 있었어요. ‘뭘 그렸냐, 왜 그랬냐, 네가 그린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으냐’ 같은 질문. 상담사가 ‘천천히 나아질 것’이라고 하는데, 저는 진짜로 그 말을 이해했는데 정작 상담사는 그 말을 책으로만 이해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제가 금방 나아지지 않자 부모님한테 ‘얘는 입원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도 상담사였어요. 상담을 해주려면 무엇보다 제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데, 제 눈도 안 마주치고 상담일지만 적는 상담사도 있어요. 진짜 저를 낫게 해주고 싶어서 상담해주는 건지, 그냥 자기 할 일을 하느라 상담하는 건지 다 느껴지죠. 상담은 많이 배워서 아는 것보다 내담자를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래 상담받은 친구들은 상담사에게 들을 수 있는 조언을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교사·부모·상담자가 애한테 얼마나 많이 물어봤겠어요. 말로 물어보는 것 자체가 신물이 날 거예요. 정형화된 접근으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죠. 저는 통상 치료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접근했어요. 미국에서 개발된 변증법적행동치료(DBT·제1238호 ‘청소년 자해 2부’에서 소개)라는 틀 안에서 융통성이 많이 필요했어요. 빈이 첫 상담 때부터 “이미 생각해봤던 거예요” 같은 반응을 보여서, ‘빈의 얘기를 그냥 들어주자’고 했어요. 얘기를 듣다보니 음악도 미술도 좋아하는 친구여서 음악과 미술로 서로 소통했어요. 빈이 자신이 그린 드로잉북을 보여줬는데 말로만 듣던 거랑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제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빈이 마음을 연 게 아닌가, 자기 창작물로 뭔가를 꾀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진 거 아닌가 싶어요. 제 상담실에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장비가 있어서, 빈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보거나 만들어보기도 해요. 그러다 자해를 했나 안 했나, 학교생활은 어땠나 물어보죠. 어느 순간 빈이 ‘제 생활에 변화가 있고, 하고 싶은 게 생겼고, 그것들을 실천하는 중입니다’ 이런 과정으로 흘러온 거예요.
무엇이 바뀌면 우울하지 않고 행복할까? #자기인정
수원 행복한우리동네의원 카페(우리가 꿈꾸는 동네) 벽면에 붙어 있는 응원 글귀들.
“처음엔 제가 우울한 원인들, 성적 문제나 고민이나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괜찮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우울한 원인이 없어져도 우울한 거예요. 옛날에 우울했던 원인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지금은 아무 일 없는데도 스트레스가 올라와요. ‘나는 왜 이걸로 스트레스를 받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니까 자괴감이 생기죠.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잠시 우울은 잊을 수 있지만 완벽히 없앨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자기가 우울하고 힘들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 첫 번째 단계라는 걸, 자해하는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진짜 우울한 게 아니라 자기가 엄살 부리는 거라고 생각해버리면 자괴감만 더 커져요. 그냥 ‘난 우울한 사람이구나’ 인정하면 병원에도 가고 상담도 받고 나아질 방법을 찾아보게 돼요. 저도 이유가 없는데 우울하니까 ‘아 내가 심각하구나’ 깨달았고, 그때부터 정신질환을 찾아봤어요. 제가 우울한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고 나면, 자해에 의존하지 않고 조금씩 줄이게 돼요.”
어떤 원인으로 자해하든 해결책은 감정을 조절할 방법을 찾아주는 거예요. 단, 아이 스타일에 맞게. 감정이 바뀌면 생각과 행동이 바뀌고 그럼 습관이 달라져요. 우울해서 자해하든 답답해서 자해하든 멍해서 자해하든 어쨌든 감정적으로 혼란한 상태죠. 감정이 혼란스러운데, 왜 힘든지 물어보면 자기도 자기가 왜 힘든지 몰라요. 그 감정을 알기 위해 감정카드도 써보고 상황 설명도 해보면서 ‘주적’을 찾아요. 빈의 주적은 ‘내 자신을 모르겠다, 내 마음을 어디다 둬야 될까, 나는 방향을 잡고 나아가고 싶은데, 그게 뭘까’ 하는 혼란이었어요. 답을 빨리 찾으려는 마음을 버리는 게 최우선인 것 같다는 대화를 나눴죠. 그리고 일단 뭐 하나라도 눈에 띄거나 마음에 들어오면 주저 없이 행동해보게 했어요.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구상해본 뒤 행동해야 위험이 적다고 하면서 생각만 하고 결국 행동하지 않아요. 머릿속은 전쟁인데 삶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면 백날 전쟁해봐야 소용없어요. 빈을 정말 칭찬해주고 싶은 게 있어요. 아이들이 게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근데 빈은 실제 만들었어요. 빈은 하고 싶은 거 일단 해보는 스타일인데, 그 가치를 절하하면 안 된다고 말해주죠.
자해에 대한 생각은? #일탈이 아니다
“자해가 무작정 그만둬야 할 비행은 아닌 것 같아요. 나쁜 맘 먹고 비뚤어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힘들 때 나아지려고 하는 거니까요. 자해를 하는지 안 하는지보다 왜 하는지를 봐주는 게 제일 중요해요. 뛰다가 다친 사람한테 ‘넘어지면 어떡하냐’고 안 하는 것처럼, 정말 힘들다면 일단 다그치기보단 도와주고 일으켜 세워줘야 해요. 다리 부러지면 병원에 가듯이 마음이 아플 때도 병원에 가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주는 문화도 필요하고요.”
자해 때문에 상담하러 오지만 자해가 초점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당장 자해만 멈추면 해결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자해는 겉으로 드러난 상처일 뿐, 자해를 멈춘다고 마음이 편해지겠어요? 아이는 자해를 당장 자기 치료법으로 쓰고 있는데, 그걸 빼앗으려면 대신 뭘 해줘야 할 것 아니에요? 이 아이가 다른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해요. 익숙해지면 열 번 자해하던 거 일고여덟 번만 할 수 있고, 더 이상 자해가 효과 없다 생각하면 알아서 멈추겠죠. 개인차는 있는데 3~6개월 지나면 많이 하던 아이들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줄어요.
청소년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진통제로 자해를 선택했던 사람들은 자해 그 뒤 어떻게 됐을까? 성인이 된 뒤에도 다른 출구를 찾지 못한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다행히 자기만의 건강한 방법을 찾아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된 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 회 제목이 ‘자해를 멈춘 사람들’로 결정된 배경이다.
자해를 멈춘 사람 중에는 특히 자신이 겪은 아픔과 괜찮아지기까지 과정을 적극적으로 나누려는 선의를 가진 이가 많았다. 그들을 ‘한때 자해했던 이상한 사람’으로 보고 배척할지, 아니면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 혹은 ‘동료 전문가’(Peer Specialist)로 인정하고 그들이 내민 손을 붙잡을지는 한국 사회의 선택이다. 다만 그 선택에 따라 향후 한국 사회가 마련할 자해 대책은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릴 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람들한테 꼭 해주고 싶은 얘기예요. 제가 자해했다는 걸 숨길 생각 없어요. 오히려 제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게 자랑스러울 거 같아요. 자해하는 사람이나, 자해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도움 될 수 있다는 게.”
고교 2학년 김빈(18·가명)은 지난 10월13일 실명 인터뷰를 고집했다. 가명을 쓰기로 한 건 <한겨레21>의 설득이었다. 정신건강 문제 전반에 대한 편견이 깊은 한국 사회다. 아직 성인이 아닌 빈에게 만에 하나 피해가 갈까 걱정이 앞섰다. 빈을 병원에 데려갈 때도 행여 아들 장래에 누가 될까 “의사에게 ‘진료 기록 안 남는 거 맞느냐’고 끝없이 물었다”(빈의 말)는 어머니의 마음도 배려했다. 대신 빈에게 약속했다.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훗날 디지털 기사에 다시 빈의 진짜 이름을 넣어주겠노라고.
빈이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빈은 그것을 “희망”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굳이 정의하지 않았어도 자해하는 아이들과 부모에겐 비관에 맞설 가능성을 보여주는 경험담이었다. 빈 역시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자해를 했다. 중3 겨울방학 때 처음 병원을 찾은 뒤 2년간 4명에게서 “허술하고 부실한” 치료와 상담을 받았다. 그사이 자해는 변하지 않을 습관처럼 굳어갔다. 학교 상담교사의 소개로 별 기대 없이 찾은 병원에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다섯 번째 상담사를 만난 지 4개월, 빈의 자해는 잦아들었다. <한겨레21>은 6~7년간 지속된 빈의 자해가 4개월 만에 호전된 배경을 알고 싶었다. 빈의 생각을 전하는 데 충실하되, 이해를 돕기 위해 빈의 ‘다섯 번째 상담사’ 문현호(우리동네정신건강연구소, 소리와 건강연구소 초록문) 선생님의 설명을 보탰다. 이하 분홍 바탕 글은 문 선생님의 설명이다.
빈을 자해에 이르게 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자기혐오
“외아들이라 부모님 기대가 컸어요. 성적 스트레스가 심했죠. 시험 몇 개 틀리면 부모님이 물건 던지고 부수고. 2~3학년 때 게임기 같은 아끼는 물건을 물에 집어넣는다고 하시고. 사소한 일이지만 트라우마로 남았어요. 초3 때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부모님은 의사가 돼야 성공한다고 하셨어요. 맞을까봐 무서워서 공부하긴 했는데 ‘이걸 왜 해야 하나, 내 인생에 도움이 되나’ 싶었죠. 부모님한테 힘들다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는데 ‘또 죽고 싶냐’며 엄살이라고 혼내셨죠. 초등 4~5학년 때부터 자해인지도 모르고 벽에다 머리를 찧었어요. 부모님은 중3 때까지 모르셨고요.”
빈은 머리가 좋고 어릴 때 공부를 잘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부모님이 공부 쪽으로 다그쳤던 듯한데, 빈이 맞추다 맞추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공부를 놓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마찰을 빚기 시작한 것 같아요.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많고 자기를 표현하고 발휘하고 싶은 욕구가 큰 아이인데, 방법을 몰라서 힘든 경우예요. 방법을 모르니까 자신을 원망하고, 너무 힘드니까 자해하게 된 거죠.
“사소한 것도 걱정하고 혼자 고민하는 버릇이 있었고 겁이 많았어요. 우울할 때 정말 여러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뭐가 문젤까, 내가 힘든 이유가 뭘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보면 원인이 제가 되더라고요. 더러 남을 탓하거나 남들한테 까칠하게 구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저 자신한테로 화살이 향해요. 죄지은 것 같고 벌 받아 마땅한 것 같고, 스트레스를 풀 방법은 없고. 오롯이 내 잘못이고 남들한테 민폐 끼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생겨요. 정작 피해 주지 말아야 하는 일엔 신경 안 쓰고, 제가 의식하는 것만 골몰하게 돼요. 남들이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제 옷 색깔이라든가…. 말도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자책하면서 최악의 상황만 생각하죠. 뭔가 머릿속으로 불안하고 잠도 못 잘 것 같고 생각이 복잡할 때 자해를 하면, 멍해지면서 다 잊을 수 있었어요. 머릿속을 비우려고 어떤 사람은 명상을 하고 어떤 사람은 취미생활을 하지만 저는 자해를 한 거예요.”
자해하는 아이들의 상태가 행복하진 않겠죠. 우울·불안·답답·스트레스 등 많을 텐데, 그런 감정적 혼란을 야기하는 것은 자기혐오감이에요. 자기에 대한 철저한 비판, 죄책감, 자책. 자기혐오감이 큰데 잘 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잘 살고 싶은데 내가 너무 싫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데 가르쳐주는 데가 없죠. 요즘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남과 비교당하는 것부터 시작해요. 남과 비교하면 자신한테 부족한 것밖에 안 보이죠. 뭘 해도 나보다 뛰어난 애들은 어디든 있거든요. 나도 잘하고 싶은데 안 되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내 ‘몸뚱아리’밖에 없으니까… 자기도 모르게 어느 순간 긋고 있더래요. 시작은 나도 모르게 하게 됐는데, 해보니까 갑자기 감정적 혼란이 풀리더라는 거예요.
“5~6학년 땐 왕따도 당했어요. 면역력이 좋지 않아서 이곳저곳 자주 아프고 가만히 앉아서 그림만 그리니 살이 찌더라고요. 친구들한테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진 못했던 거 같아요. 놀리거나 다 같이 저를 따돌리거나 그랬죠. 초등학교 시절은 별로 되돌아보고 싶지 않아요.”
빈은 위안거리가 없는 친구였어요. 학교를 가도 어디에 있어도 마음 둘 곳이 별로 없고,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관계 속에서 힘든 게 있었어요.
어떻게 자해했을까? #방법보다 이유
“펜이나 연필로 팔다리를 찍거나 칼로 긋거나. 긋는 건 중2 때 처음 했어요. 처음엔 안 그랬는데 나중엔 피를 내지 않으면 진정이 안 됐어요. 정말 우울하고 복잡할 때, 처음에는 감정을 표출할 수단이었다가, 횟수가 잦아지면서 습관이 되더라고요. 조금만 긴장하면 긋게 되고. 처음엔 베이는 거랑 느낌이 똑같은데, 점점 아픈 데 무뎌지고 익숙해져요. 자해하는 사람한테 얼마나 상처가 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왜’ 자해했는지 이유가 중요할 뿐이에요.”
빈은 난사하는 정도로 상처를 내요. 자해한 날은 팔 전체가 스크래치로 덮여 있죠. 시간이 좀 지나면 팔이 깨끗해지는 걸 보면, 상처를 깊이 내진 않고 힘든 게 풀릴 때까지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부모님 반응은 어땠을까? #부인과 비난
“학교 상담이 원래 애들한테는 평가가 안 좋아요. 비밀을 유지해준다고 한 다음에 부모님한테 다 말해요. 엄마가 알고 ‘내가 안 해준 게 뭐냐’며 엄청 혼내고, 울고불고 하시니까 또 싸우게 됐어요. 그때를 되돌아보면 엄마가 저한테 했던 말 하나하나가 다 트라우마예요. 중3 겨울방학 때 처음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우울증 심하다’고 하니까 엄마가 ‘의사가 돌팔이’라며 안 믿었어요. ‘네가 뭐가 힘드냐, 힘든 거 자랑 아니니 숨기고 다녀라’ 그러셨죠. 옮긴 병원에서 약을 받았는데 엄마가 ‘검사 결과 틀렸다, 약 버려라’고 해서 약도 못 먹었어요.”
자해하는 아이들에게 ‘왜 그렇게 의지가 약하냐, 고작 그런 걸로 자해하냐, 너만 힘드냐, 정신병자냐’는 흔하게 가해지는 비난이에요. 아이가 자해했을 때, 누구 잘못인지 찾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요. 중요한 건 현재와 이후예요. 앞으로도 인생은 힘들고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을 거예요. 계속 스트레스에 얻어터지고만 살 것인가… 다르게 사는 방법을 찾게 해야죠. 아이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당분간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곁에 머물러주는 게 필요해요.
“자해하는 이의 주변 사람들은 위로해주는 역할이 중요해요. 근데 ‘내가 너를 걱정·위로해줬는데, 왜 너는 내 말을 안 듣냐, 왜 너는 노력하지 않고 계속 자해하느냐’고 섭섭해하고 화를 내죠. 변하고 싶은데 안 되는 걸 어떻게 해요. 노력의 기준을 변화로 보면 안 돼요. 제일 안 좋은 행동인데, 엄마가 집에 있는 날붙이(날이 있는 연장)를 다 없앴어요. 날카로운 건 어디든 있고 날카로운 거 없어도 맘만 먹으면 자해를 할 수 있어요. 자해를 멈추고 안 죽는 게 목적이 아니라, 팔 안 긋고 목 안 매어도 행복해지는 게 목적이 돼야 해요.”
전문가도 막상 아이가 자해해서 피 흘리고 병원에 오면 공포·좌절·반감을 느껴요. 부모야 더 심하겠죠. 내 자식인데 더 당황스럽고 더 큰 아픔을 느끼시겠지만, ‘아이에게 자기를 돌보는 건강한 습관을 알려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기다려주세요.
“‘내가 널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데’로 시작하는 잔소리… 끝도 없죠. 그럼 자해하는 아이는 ‘부모님도 자기 생각밖에 안 하는구나’ 하고 배신감을 느껴요. ‘내 편은 세상에 없구나’ 싶어지는 거죠. 정신적 고통을 육체적 고통에 비유해보세요. 열심히 운동하다 피 흘릴 정도로 다쳤어요. 그걸 가지고 다그치면서 ‘너는 왜 그거 하나 너 혼자 못 고치냐, 너는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주저앉아 있느냐’고 안 하잖아요. 자해를 억지로 막는 일만 안 해주면 좋겠어요.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면 차라리 무시하는 게 나아요.”
빈의 어머니도 요즘은 달라지셨어요. 빈한테 듣기로는, 어머님이 대화하려 노력하시고 아이가 원하는 걸 지지해주는 쪽으로 많이 바뀌셨다고 해요. 빈이 취미로 거미나 전갈을 기르고 싶어 했는데, 어머님은 싫어하시지만 그것도 허락하셨대요.
치료는 효과가 있었을까? #치료보다 소통
“1년 정도 다닌 병원에서 항우울제와 충동억제제를 처방받았어요. 정말 힘들 때 사흘치 약을 한꺼번에 털어넣고 학교에서 내내 잤어요. 어지럽고 속도 메스껍고. 정신과 선생님이니까 다그치시진 않았는데,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사실 저는 빈이 우울증이라는 진단에 동의하지 않아요. 저는 빈에게 ‘문제가 너에게 있는 거 같지 않다, 정신질환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해요. 빈이 말을 되게 잘하잖아요. 감수성이 굉장히 예민하고 사람들의 말투나 관계, 피드백에 많이 영향을 받아요. 잘 발현되면 남들보다 독특한 감각으로, 부정적 감정으로 얽히면 자기를 파괴하는 쪽으로 갈 수 있죠. 다행히 요즘 감수성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것 같아서 기뻐요.
“누구와 상담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요. 정말 무성의하게 대충 하는 상담사도 많아요. 전에 미술치료를 했는데 종이 하나 주고 아무거나 그리라고. 저는 이미 그 상담사가 다음에 뭘 물어볼지, 무슨 의도로 물어보는지도 다 알고 있었어요. ‘뭘 그렸냐, 왜 그랬냐, 네가 그린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으냐’ 같은 질문. 상담사가 ‘천천히 나아질 것’이라고 하는데, 저는 진짜로 그 말을 이해했는데 정작 상담사는 그 말을 책으로만 이해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제가 금방 나아지지 않자 부모님한테 ‘얘는 입원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도 상담사였어요. 상담을 해주려면 무엇보다 제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데, 제 눈도 안 마주치고 상담일지만 적는 상담사도 있어요. 진짜 저를 낫게 해주고 싶어서 상담해주는 건지, 그냥 자기 할 일을 하느라 상담하는 건지 다 느껴지죠. 상담은 많이 배워서 아는 것보다 내담자를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래 상담받은 친구들은 상담사에게 들을 수 있는 조언을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교사·부모·상담자가 애한테 얼마나 많이 물어봤겠어요. 말로 물어보는 것 자체가 신물이 날 거예요. 정형화된 접근으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죠. 저는 통상 치료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접근했어요. 미국에서 개발된 변증법적행동치료(DBT·제1238호 ‘청소년 자해 2부’에서 소개)라는 틀 안에서 융통성이 많이 필요했어요. 빈이 첫 상담 때부터 “이미 생각해봤던 거예요” 같은 반응을 보여서, ‘빈의 얘기를 그냥 들어주자’고 했어요. 얘기를 듣다보니 음악도 미술도 좋아하는 친구여서 음악과 미술로 서로 소통했어요. 빈이 자신이 그린 드로잉북을 보여줬는데 말로만 듣던 거랑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제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빈이 마음을 연 게 아닌가, 자기 창작물로 뭔가를 꾀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진 거 아닌가 싶어요. 제 상담실에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장비가 있어서, 빈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보거나 만들어보기도 해요. 그러다 자해를 했나 안 했나, 학교생활은 어땠나 물어보죠. 어느 순간 빈이 ‘제 생활에 변화가 있고, 하고 싶은 게 생겼고, 그것들을 실천하는 중입니다’ 이런 과정으로 흘러온 거예요.
무엇이 바뀌면 우울하지 않고 행복할까? #자기인정
“처음엔 제가 우울한 원인들, 성적 문제나 고민이나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괜찮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우울한 원인이 없어져도 우울한 거예요. 옛날에 우울했던 원인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지금은 아무 일 없는데도 스트레스가 올라와요. ‘나는 왜 이걸로 스트레스를 받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니까 자괴감이 생기죠.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잠시 우울은 잊을 수 있지만 완벽히 없앨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자기가 우울하고 힘들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 첫 번째 단계라는 걸, 자해하는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진짜 우울한 게 아니라 자기가 엄살 부리는 거라고 생각해버리면 자괴감만 더 커져요. 그냥 ‘난 우울한 사람이구나’ 인정하면 병원에도 가고 상담도 받고 나아질 방법을 찾아보게 돼요. 저도 이유가 없는데 우울하니까 ‘아 내가 심각하구나’ 깨달았고, 그때부터 정신질환을 찾아봤어요. 제가 우울한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고 나면, 자해에 의존하지 않고 조금씩 줄이게 돼요.”
어떤 원인으로 자해하든 해결책은 감정을 조절할 방법을 찾아주는 거예요. 단, 아이 스타일에 맞게. 감정이 바뀌면 생각과 행동이 바뀌고 그럼 습관이 달라져요. 우울해서 자해하든 답답해서 자해하든 멍해서 자해하든 어쨌든 감정적으로 혼란한 상태죠. 감정이 혼란스러운데, 왜 힘든지 물어보면 자기도 자기가 왜 힘든지 몰라요. 그 감정을 알기 위해 감정카드도 써보고 상황 설명도 해보면서 ‘주적’을 찾아요. 빈의 주적은 ‘내 자신을 모르겠다, 내 마음을 어디다 둬야 될까, 나는 방향을 잡고 나아가고 싶은데, 그게 뭘까’ 하는 혼란이었어요. 답을 빨리 찾으려는 마음을 버리는 게 최우선인 것 같다는 대화를 나눴죠. 그리고 일단 뭐 하나라도 눈에 띄거나 마음에 들어오면 주저 없이 행동해보게 했어요.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구상해본 뒤 행동해야 위험이 적다고 하면서 생각만 하고 결국 행동하지 않아요. 머릿속은 전쟁인데 삶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면 백날 전쟁해봐야 소용없어요. 빈을 정말 칭찬해주고 싶은 게 있어요. 아이들이 게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근데 빈은 실제 만들었어요. 빈은 하고 싶은 거 일단 해보는 스타일인데, 그 가치를 절하하면 안 된다고 말해주죠.
자해에 대한 생각은? #일탈이 아니다
“자해가 무작정 그만둬야 할 비행은 아닌 것 같아요. 나쁜 맘 먹고 비뚤어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힘들 때 나아지려고 하는 거니까요. 자해를 하는지 안 하는지보다 왜 하는지를 봐주는 게 제일 중요해요. 뛰다가 다친 사람한테 ‘넘어지면 어떡하냐’고 안 하는 것처럼, 정말 힘들다면 일단 다그치기보단 도와주고 일으켜 세워줘야 해요. 다리 부러지면 병원에 가듯이 마음이 아플 때도 병원에 가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주는 문화도 필요하고요.”
자해 때문에 상담하러 오지만 자해가 초점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당장 자해만 멈추면 해결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자해는 겉으로 드러난 상처일 뿐, 자해를 멈춘다고 마음이 편해지겠어요? 아이는 자해를 당장 자기 치료법으로 쓰고 있는데, 그걸 빼앗으려면 대신 뭘 해줘야 할 것 아니에요? 이 아이가 다른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해요. 익숙해지면 열 번 자해하던 거 일고여덟 번만 할 수 있고, 더 이상 자해가 효과 없다 생각하면 알아서 멈추겠죠. 개인차는 있는데 3~6개월 지나면 많이 하던 아이들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줄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