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현 피어스페셜리스트 16살
제목: 조금은 특별하게
2학년 1학기는 반에 마음을 두지 않고 다른 반 친구와 지내며 생활했었다.
2학기가 찾아오고, 모둠활동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반에 친구가 없는 나에게 모둠활동이란 과제에서의 스트레스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것 때문인가 언제부턴가 나에게 과호흡이라는 증상, 공황장애라는 아픔이 찾아왔다.
교실에 들어가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가슴은 계속해서 아파왔고, 정신적으로 힘듦을 벗어나 신체적인 힘듦을 겪었다. 학교에서 그리고 가정에서는 그런 나에게 무조건 버티라고 소리쳤다. 내가 왜 아프고 왜 힘든 지가 우선이 아닌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을 우선으로 나에게 압박감을 주었다.
정신적인 문제를 정신적으로 다루지 않고 자꾸만 상식적으로 다루었다. 나는 마지막 수단으로 자해를 선택했다.
학교에서 공황장애라는 병을 가지고서도 조퇴 없이 버티고 돌아온 나에게 “무조건 그냥 버텨!”라는 말이 돌아오자 순간적으로 나라는 사람의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렸다. 이때가 내 자해의 첫 시작이었다.
얼마 안돼서 학교에 내 자해사실이 밝혀지고 학교 선생님들과 내 친구, 부모님이 알게 되었다. 무서웠다.
나에게 그렇게 소리 지르던 사람들에게서 돌아올 반응을 생각하니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우는 엄마와 다 같이 죽자고 자기 손으로 다 죽이겠다고 소리치는
아빠... 나또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정신차려보니 응급실이었다.
주사바늘이 무서워 병원에서 도망쳤었던 내 손에는 링거바늘이 꽂혀있었고 진정하고 보니 병실이었다. 퇴원 후에는 예상치도 못했던 스트레스가 잘해보겠다는 내 희망을 꺾었다. 뺏겨버린 핸드폰과 잠시도 닫지 못하는 내방 문. 자해 상처에 집작하며 다그치는 부모님. 그때마다 눈앞이 흐려지며 정신을 못 차리던 나.
이런 생활이 한 달간 지속 되었다. 1년 같았던 한 달. 마치 나무늘보가 50m 달리기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듯 지나가는 시간... 그 시간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학교 교무에서 회의 열리고 부모님이 학교에 불려 다니고 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강제 학업 중지 이야기까지 나오고, 학교에서 학교를 다니려면 멀쩡하다는 병원 진단서를 가져오라 하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자신감이라는 게 생겼고 교실에 들어가는 게 가능할 정도로 증상이 호전되었다. 그러나 코로나가 터지고 개학연기와 동시에 나의 우울증은 다시 심해졌다.
중학교 3학년이 되서도 자해와 우울한 생활을 반복하며 우여곡절 끝에 졸업을 했지만 다시 좋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아직은 힘들 따름이다.
2학년 말에 좋아졌던 게 지금 생각하면 목표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학교와 위클래스의 현실을 밝히고 더 이상 학교로 인해 피해 받는 학생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거기에 기여하겠다는 목표.
초등학교 때는 인지하지 못하고 학교폭력을 당하고 중학교 때는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며 자살의 문턱까지 밟아오며 별 경험을 다한 나에게 적어도 나처럼 힘들어 하는 청소년만큼은 내가 도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던 것이다.
나도 이 자신감을 나와 같이 힘들어 했던 청소년의 연설을 통해 얻었고 나도 그렇게 다른 청소년들을 돕고 싶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원인 1위 자살, 청소년 자살률 1위에, 자해하거나 정신적인 아픔을 겪고 있는 청소년이 반마다 1~2명 이상 나오고 있다.
사회적인 청소년 문제에 내가 기여할 수 있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유 전부를 이뤄낸 것이다. 앞으로 나는 마음이 힘든 청소년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의 권리까지 지켜나갈 수 있게. 청소년들에게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다.
내가 아팠던 만큼 힘들었던 만큼 미래의 청소년들은 더 행복할 수 있게 청소년이 자아정체감을 올바르게 형성하는 일과 청소년이 행복을 방해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아 부울 것이다.
기고를 마치며
중학교 2학년 때 시인 등단을 하며, 조금은 특별하게 나에게 안맞는 공부보다는 나에게 맞는 걸 찾는 길을 택했다. 그 과정이 끝나지 않아서 이 길에 대해 긴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너무 험난했다. 지금까지의 생활들이 결코 안정적이지 않았다. 내 정서가 너무 위태로웠다. 학생은 공부를 하는 게 맞다고들 하는데, 공부를 안하고 사는 생활이 결코 좋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되어버린 이 상황들이 내 선택이었지만 내가 책임지기엔 너무나 짐이 컸기 때문이다.
연가현 피어스페셜리스트 16살
제목: 조금은 특별하게
2학년 1학기는 반에 마음을 두지 않고 다른 반 친구와 지내며 생활했었다.
2학기가 찾아오고, 모둠활동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반에 친구가 없는 나에게 모둠활동이란 과제에서의 스트레스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것 때문인가 언제부턴가 나에게 과호흡이라는 증상, 공황장애라는 아픔이 찾아왔다.
교실에 들어가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가슴은 계속해서 아파왔고, 정신적으로 힘듦을 벗어나 신체적인 힘듦을 겪었다. 학교에서 그리고 가정에서는 그런 나에게 무조건 버티라고 소리쳤다. 내가 왜 아프고 왜 힘든 지가 우선이 아닌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을 우선으로 나에게 압박감을 주었다.
정신적인 문제를 정신적으로 다루지 않고 자꾸만 상식적으로 다루었다. 나는 마지막 수단으로 자해를 선택했다.
학교에서 공황장애라는 병을 가지고서도 조퇴 없이 버티고 돌아온 나에게 “무조건 그냥 버텨!”라는 말이 돌아오자 순간적으로 나라는 사람의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렸다. 이때가 내 자해의 첫 시작이었다.
얼마 안돼서 학교에 내 자해사실이 밝혀지고 학교 선생님들과 내 친구, 부모님이 알게 되었다. 무서웠다.
나에게 그렇게 소리 지르던 사람들에게서 돌아올 반응을 생각하니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우는 엄마와 다 같이 죽자고 자기 손으로 다 죽이겠다고 소리치는
아빠... 나또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정신차려보니 응급실이었다.
주사바늘이 무서워 병원에서 도망쳤었던 내 손에는 링거바늘이 꽂혀있었고 진정하고 보니 병실이었다. 퇴원 후에는 예상치도 못했던 스트레스가 잘해보겠다는 내 희망을 꺾었다. 뺏겨버린 핸드폰과 잠시도 닫지 못하는 내방 문. 자해 상처에 집작하며 다그치는 부모님. 그때마다 눈앞이 흐려지며 정신을 못 차리던 나.
이런 생활이 한 달간 지속 되었다. 1년 같았던 한 달. 마치 나무늘보가 50m 달리기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듯 지나가는 시간... 그 시간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학교 교무에서 회의 열리고 부모님이 학교에 불려 다니고 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강제 학업 중지 이야기까지 나오고, 학교에서 학교를 다니려면 멀쩡하다는 병원 진단서를 가져오라 하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자신감이라는 게 생겼고 교실에 들어가는 게 가능할 정도로 증상이 호전되었다. 그러나 코로나가 터지고 개학연기와 동시에 나의 우울증은 다시 심해졌다.
중학교 3학년이 되서도 자해와 우울한 생활을 반복하며 우여곡절 끝에 졸업을 했지만 다시 좋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아직은 힘들 따름이다.
2학년 말에 좋아졌던 게 지금 생각하면 목표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학교와 위클래스의 현실을 밝히고 더 이상 학교로 인해 피해 받는 학생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거기에 기여하겠다는 목표.
초등학교 때는 인지하지 못하고 학교폭력을 당하고 중학교 때는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며 자살의 문턱까지 밟아오며 별 경험을 다한 나에게 적어도 나처럼 힘들어 하는 청소년만큼은 내가 도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던 것이다.
나도 이 자신감을 나와 같이 힘들어 했던 청소년의 연설을 통해 얻었고 나도 그렇게 다른 청소년들을 돕고 싶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원인 1위 자살, 청소년 자살률 1위에, 자해하거나 정신적인 아픔을 겪고 있는 청소년이 반마다 1~2명 이상 나오고 있다.
사회적인 청소년 문제에 내가 기여할 수 있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유 전부를 이뤄낸 것이다. 앞으로 나는 마음이 힘든 청소년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의 권리까지 지켜나갈 수 있게. 청소년들에게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다.
내가 아팠던 만큼 힘들었던 만큼 미래의 청소년들은 더 행복할 수 있게 청소년이 자아정체감을 올바르게 형성하는 일과 청소년이 행복을 방해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아 부울 것이다.
기고를 마치며
중학교 2학년 때 시인 등단을 하며, 조금은 특별하게 나에게 안맞는 공부보다는 나에게 맞는 걸 찾는 길을 택했다. 그 과정이 끝나지 않아서 이 길에 대해 긴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너무 험난했다. 지금까지의 생활들이 결코 안정적이지 않았다. 내 정서가 너무 위태로웠다. 학생은 공부를 하는 게 맞다고들 하는데, 공부를 안하고 사는 생활이 결코 좋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되어버린 이 상황들이 내 선택이었지만 내가 책임지기엔 너무나 짐이 컸기 때문이다.